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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작은 영화관

[영화 리뷰] 옥자

by 비아(pia) 2021. 9. 24.

많은 채식인들이 옥자를 보고 채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트레일러 영상을 봤는데 돼지 머리가 절단되어 구르는 것을 보고 보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엔 돼지가 나오는 괴물 영화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괴물이 된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였다.

 

옥자

 

| 줄거리

미란도의 새로운 CEO가 된 루시는 환경과 생명을 새로운 가치로 선언한다. 현재 만연해 있는 8억 5백만 명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슈퍼 돼지'를 내세우며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라고 제안한다. 

 

루시는 최초의 슈퍼 아기 돼지가 칠레의 한 농장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돼지를 미란도 목장으로 데려와 사랑과 정성 속에 다양한 관찰과 연구를 했고, '강압적이지 않은 자연 교미 방식'으로 새끼 26마리를 번식시켰다고 말한다. (교미 방식에 포인트를 준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미란도는 슈퍼 아기 돼지 26마리를 해외 지사가 있는 26개국으로 보내 현지의 축산농민들에게 한 마리씩 분양하고, 각국의 전통 방식으로 길러 달라고 제안한다. 아기 돼지를 가장 크고 아름답고 특별하게 키운 농민을 뽑는 슈퍼 돼지 콘테스트를 개최할 것이라며 말이다. 

 

옥자는 한국으로 분양된 슈퍼 아기 돼지이다. 산골짜기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미자에게 보내진 옥자를 슈퍼 돼지 콘테스트에 참석시키기 위해 뉴욕으로 데려가게 되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자가 옥자를 데려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반려동물의 경계

강원도 산골에서 살고 있는 미자에게 옥자는 10년을 함께 자라온 소중한 가족이다. 그런 옥자를 미란도에서, 콘테스트 참석을 이유로 금덩어리 하나를 쥐어주고는 미국 본사로 데려간다. 이미 헤어짐을 알고 있었던 할아버지와 달리 미자는 큰 상실에 빠지고,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옥자를 찾으러 무작정 서울로 떠난다.

 

어릴 때 나에게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발바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본적도 없는 삼촌들이 와 개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예뻐하던 나의 첫 애견이었기 때문에 정말 많이 울었다. 싫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데려갔고 방 구석에서 엉엉 울고 있을 때 내 손에는 삼천원이 쥐어졌다. 

 

옥자를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내 어릴 적 기억이 떠올라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흔히 반려동물에는 개나 고양이만 포함이 된다. 하지만 미자에게 옥자 또한 반려동물이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친구, 가족과 같은 관계라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통해 반려동물의 존재가 개와 고양이에게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했다.

 

 

| 공장식 축산업

봉준호 감독은 실제 콜로라도에 있는 거대 도살장에 방문한 적이 있다며, 공장식 축산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옥자를 실험실에 데려와 마블링을 추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사용한 기구는 만든 소품이 아니라 실제 업계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한다.

 

찔렀다 빼면 고기가 뽑혀 나오고 소는 몸에 구멍이 난 채로 멍하니 서 있다. 쌀 수매할 때 농협에서 가마니를 쑤시는 도구를 살아있는 소에게 쓰는 셈이다. 실제 도살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도 생명체에서 제품으로 전환되는 경계가 어디냐였다. 스턴건으로 절명당했을 때도 소는 여전히 동물이다. 목을 따서 거꾸로 매달아 피를 뽑을 때도 여전히 죽은 동물 같다. 그러다 0.1초 만에 소 전체의 가죽을 벗기는 거대한 기계가 다가오고 순식간에 붉은 살덩이가 출렁한다. 그 순간부터 제품이구나 싶었다.

/ 봉준호 감독 인터뷰 발췌

 

애초에 루시가 말한 26마리의 슈퍼 아기 돼지들은 미란도가 진짜 대량생산 유통을 위한 유전자 변형 돼지를 완성하는 10년을 커버하는 도구일 뿐이였다. 뒤에서는 대량생산을 위한 연구가 10년동안 진행되고 있었고, 시선을 돌리기 위해 10년 뒤 슈퍼 돼지를 가장 잘 키운 농민을 뽑는 콘테스트를 개최할 것이라며 운을 뗀 것이다. 하지만 옥자가 너무 '상품성 있게' 잘 자라 버린 거지.

 

옥자는 공장식 축산업의 실체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옥자는 실험실에 오자마자 강간당하고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는 상태에서 샘플을 착취당했다. 비단 옥자 뿐 아니라 그 곳에 있는 다른 돼지들이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소세지가 되기까지 같은 과정을 겪었다. 사람들은 그 과정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광고 문구만을 보고 소비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루시는 '환경과 생명'을 미란도의 새로운 가치로 제안했다. 강압적이지 않고 사랑과 정성 속에서 연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 그 뒷편에서 동물들의 생명이 존중되는 일은 없었으며 연구 과정에는 잔인함과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현재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고기 또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고기와 우유를 위해 강간당하고 어린 숫송아지, 숫퇘지들은 연한 육질을 위해 좁은 창살에 갇혀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자라며, 암송아지, 암퇘지는 번식을 위해 다시 분류된다. 

 

인도적이라고 하는 도살 과정도 실제로는 전혀 인도적이지 않다. 도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그들 역시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수요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일한다는 답변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콜로라도의 도살장을 방문했을 때, 콜로라도는 "우리 시스템이 가장 인도적"이라고 자랑하며 위생관리도 잘하고 NGO가 추천한 스턴건 도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은 도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소의 행렬을 마추쳤을 때 매우 힘겨웠다고 얘기했다. 6개월간 살이 찌워진 다음 단계적으로 도살장에 가까워질 수만 마리 소의 무리가 자동차로 30분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채식을 떠나 한 번쯤은 공장식 축산업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지금과 같은 축산업을 유지하면 물, 사료, 메탄가스와 폐수로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된다. 육식을 줄여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더이상 동물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신체구조상 채식을 해야 한다는 말에, 과거 조상들도 고기를 먹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먹을 게 없던 시절, 키우던 가축을 잡아 먹으며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무분별하고 과하게 많이 섭취를 한다. 그로 인해 각종 성인병은 증가했으며, 환경은 멸종 위기의 단계에 머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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