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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라이프/mindfulness

육아의 목적

by 비아(pia) 2021. 10. 12.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이다. 즉, 아이를 20년 키우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너의 힘으로 알아서 살아라~' 하고 방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차곡차곡,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오해를 한다. 아이를 오냐오냐 키워서는 안된다고. 그러나 어릴 때 자신의 의견을 '좋은 방식'으로 인정받고 다양하게 경험을 한 아이는 커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두려움이 보다 적어지고 본인의 의견과 감정을 인정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의견과 감정 또한 존중할 줄 알게 된다.

 

"안 돼. 하지 마.", "뚝 그쳐. 조용히 해." 등의 말을 듣고 감정을 억압 받으며 체벌이라는 폭력과 함께 자란 아이는 자라서도 의기소침하고 안으로 숨을 확률이 높다. 

 

부모의 불안 때문에 아이의 경험을 막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을 하는 엄마 옆에서 아이가 '저도 해볼래요' 했을 때, 불안이 높은 엄마는 아이가 다칠 것을 미리 염려해 "안 돼. 위험해. 하지 마."하고 막는다. 불안이 낮은 엄마는 아이가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주어 아이가 하고 싶다는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 대화를 주고 받으며 요리를 한다. 

 

항상 아이를 씻겨주던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씻겨줄게"하며 유년기를 내내 씻겨주다가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나니 엄마는 "이제는 네가 혼자 씻어야지"라고 말한다. A부터 Z까지 해주다가 고작 사회적으로 또는 신체적으로 아이가 자랐다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혼자 하라며 아이 등을 떠미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막상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내가 할래'는 자기주도성이 나오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는 무엇이든 자기가 하려 한다. 자기 손으로 물을 컵에 따르려 하고, 수저를 들고 혼자 밥을 먹으려 한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면 아이도 따라 하려 한다. 서툴지만 아이가 혼자 하려 하면 엄마는 그 자발성을 격려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해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아이는 실수하면서 배운다. 스스로 해보면서 성취의 기쁨을 맛보며 성장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으려 한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엄마는 먹여주려 한다. 음식을 흘리지 않아 치우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혼자 먹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럴 때는 치우기 쉽도록 바닥에 비닐 같은 것을 깔고 주면 된다. 아이들은 반은 흘리고 반은 먹으면서 좋아한다. 혼자서 해냈다는 기쁨을 느낀다. 몇 달만 이렇게 먹어도 눈과 손의 협응력이 발달해 수저를 능숙히 사용하게 된다.

/ 푸름아빠 거울육아

 

 

 

어릴 때 나는 밥풀을 흘리면 호되게 혼이 났다. 쩝쩝거리는 소리에도 아빠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엄마는 지금도 김장을 하거나 전을 부칠 때 나랑 동생에게 시키라고 해도 "아휴~ 그걸 다 누가 치워"하며 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릴 때도 우리가 한 설거지가 못미더워 다시 설거지를 하곤 하셨다. 그냥 하셨음 좋았을 것을 꼭 한숨을 쉬시니 내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혼자 밖을 돌아다니거나 나가서 장을 보거나 식당이나 카페에 가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들을 어려워했다. 식은 땀이 날 때도 있고 긴장해서 배가 아플 때도 있었다. 몸은 한참 자란 성인이지만 제대로 독립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도 완전하진 않지만 이제 제법 밖을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 장을 보는 일도 익숙하다.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여전히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작은 불을 꼭 켜놓고 잠들지만, 나는 그렇게 내 안에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아이를 천천히 성장시키고 있다. 

 

부모의 탓이 아니다. 부모도 그들의 부모에게, 그들의 부모 또한 그들의 부모에게 그렇게 받아온 것을 나에게 물려준 것이다. 다만, 현재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스스로의 내면 아이를 먼저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고 하자.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충족하고 싶어 한다. 이럴 때 보통 부모는 "장난감 가게 문 닫았어"라고 말하고, 아이가 자꾸만 떼를 쓰면 야단친다.
부모는 경험으로 가게 문이 닫혔다는 걸 알지만 아이에겐 그런 경험이 없다. 물이 담긴 컵을 기울이면 물이 쏟아진다. 물이 쏟아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쏟아보았기에 안 것이다. 아이를 실제로 데리고 가 장난감 가게의 문이 닫혔다는 걸 보여주면, 그다음부터는 밤 12시에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험한 것도 아닌데 해주기 싫다면, 자신이 자랄 때 부모가 어떻게 키웠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허용 범위가 넓어야 한다. 그럴수록 아이의 자기주도성이 증가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허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안 된다고 못을 받아야 한다. 이는 아이에게 '네 마음껏 해보렴. 그러나 위험하면 엄마가 지켜줄게'라는 메시지를 주기에 아이는 안전하다고 느낀다.

일테면 엄마들은 아이에게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그러고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하라고 한다. 건강한 수치심을 가진 아이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상대를 탐색한다. 아이에겐 부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낯선 사람이다. 그런데 인사 안 하면 야단을 치거나, "어서 인사해!"라고 낮은 목소리로 압력을 넣거나, 머리를 눌러 강제로 인사시킨다. 아이더러 어쩌란 말인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면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인사 안 한다고 혼내다. 이를 '이중 메시지'라고 한다. 

/ 푸름아빠 거울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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