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지트/여행기록

[순천 정혜사] 3박4일 템플스테이 - 둘째 날

by 비아(pia) 2021. 7. 1.

 

8~9시쯤 잠들어서 1시쯤에 깼다. 4시간 정도 잤는데 푹 잔 것 같았다. 두 시간 정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시 자려고 하는데 복순이가 매섭게 짖었다. 아파서 거의 누워만 있는데도 위협이 될 만한 게 나타나면 짖는다고 했다. 눈이 하얗게 덮였는데도 절에 온 사람과 위험한 동물을 잘 가려내는 것이 기특했다. 또 이내 새소리가 가까이 들리더니 4시 쯤부터는 목탁 소리가 들렸다. 선잠을 자다가 4시 반쯤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40분 인요가를 했다. 밖에선 새벽 예불을 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한 아침이었다.

 

5시 반쯤 되니 공양주보살님이 나오셔서 공양 준비를 하시고 6시 20분쯤 스님께서 목탁을 치셨다. 지금 절에는 스님이 세 분 계신데 주지스님, (휴식형이라 그런지 다른 지도는 없지만)템플지도스님, 공부중이신 스님 이렇게 세 분이 계시다고 했다. 아침 공양에는 주지스님과 공부중이신 스님 두 분만 나오셨다. 처사님도 나오지 않으셔서 스님 두 분과 나, 공양주보살님 네 명이서 공양을 했다.

 

머뭇머뭇 하다가 그릇을 들고 찬을 담으려 했는데 혼이 났다. 알고 보니 스님들 배식이 덜 끝난던 것. 스님들은 그릇도 다른 그릇을 사용하신다. 그릇 개수를 맞춰 두셔서 내가 써야 할 접시 위로 스님 접시 두 개가 쌓여 있었다. 하마터면 스님들 접시를 사용할 뻔 했다. 스님들이 음식을 먼저 뜨신 후에 떠가야 한다고 공양주보살님께서 알려주셨다. 머쓱하고 민망했지만 이렇게 또 배우는 거지 뭐. 

 

아침은 채소죽이 나왔다. 절에서 스님들은 아침에 채소를 끓인 죽을 드신다고 공양주보살님이 알려주셨다. 과일 주스도 있었는데 이건 스님들께만 드리는 것인 듯 했다. 마침 스님 한 분이 안나오셔서 나를 주셨다. 덕분에 채소와 과일로 배부르게 한끼를 먹었다. 죽이 입에 맞지 않으면 남겨도 된다고 공양주보살님이 앞에서 계속 속삭이셨지만 나는 다 먹었다. 참외도 계속 권하셨다. 주스도 못 먹겠으면 먹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맛있게 다 먹고 설거지도 마쳤다. 돌아와 양치를 하는데 문득 나도 누군가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까 싶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사람이 적당히 있는 절로 가봐야지.

 

 


아침을 먹고 잠들어서 10시에 예불소리를 듣고 겨우 일어났다. 잠이 참 잘온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방문을 여니 어제는 못뵈었던 사무국장님이 계셔서 인사했다. 절을 한바퀴 돌고 마루에 앉아 멍때리고 있으니 책을 한 권 주셨다. 법륜스님의 책이었다. 받자마자 절반을 읽었다. 너무 재밌고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담당보살님이 출근하셔서 방으로 오셨다. 잘 잤느냐 물으셔서 보일러 얘기를 했더니 한 번 확인해보겠다고 하셨다. 바로 점심 공양 시간이 되서 공양간으로 갔다. 공양간 가는 도중에 처사님과 사무국장님이 내려가시는 것을 보고 따라 갔는데 스님이 모두 들어가실 때까지 기다리시길래 나도 눈치게임하면서 서있었다 ㅋㅋㅋ 공양 하면서 배운 점! 사실 절에서는 어떤 누가 와도 자기가 사용한 식기는 직접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한다.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은 공양간 불까지 끄고 나가기.

 

점심은 버섯 미역국과 나물 반찬들, 수박이 나왔다. 배식하는 테이블에 있던 수박을 식사 끄트머리에 담당보살님이 테이블로 가져오셨다. 나는 수박을 담지 않았는데 보살님이 예쁜 조각은 나 먹으라며 한조각 챙겨주셨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처사님이 오셨는데(24시간마다 교대근무를 하신다고) 엄마가 보내서 왔느냐고 하셨다 ㅋㅋㅋㅋㅋ 다들 나를 학생처럼 보신다. 저 20대 후반인데요?! 좋은건지는 모르겠지망 무튼 잘 챙겨주시니 그러려니 한다. 


사무국장님께서 보일러 메인 스위치가 내려가 있었다고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방에 와서 보니 여전히 안되서 말씀드렸더니 웬걸, 고장난 보일러를 켜고 있었다. 작동하는 보일러는 서랍장 뒤쪽에 있었고 오셔서 온도까지 맞춰주셨다. 오늘은 온돌에 뜨뜻하게 지지고 자야지.

 

공양 후 방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사무국장님이 복순이랑 산책가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따라 나섰다. 정혜사 정류소까지 걸어내려갔다 왔는데 옷이 땀으로 다 젖었다. 햇볕은 따뜻했고 그늘은 시원했다. 딱 여름 날씨였다.

 

 


 

방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탈수기를 써볼까 했는데 쓴지 오래된 것 같아 그냥 손으로 힘껏 짜내었다. 숙소 뒤쪽으로 빨래줄이 있는데 분명 첫 날, 빨래는 저기에 널면 된다고 안내를 받았는데도 괜히 눈치를 봤다. 그래도 볕도 바람도 잘 드니 빨래를 꼭 널어야겠더라.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가 빨래를 널었다.

그리곤 어제 받은 떡을 먹으면서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 잠이 솔솔 온다. 30분 정도 드러누웠다가 인기척에 깨서 필사를 했다. 책 읽고 필사하고 책 읽고 필사하고. 다섯시가 가까워지니 담당보살님이 쿠키와 사탕을 챙겨주셨다. (하지만 논비건이라 먹을 수가 없다) 절복도 한벌 더 챙겨주시고 필요한게 있으면 내일 오는 길에 사다줄테니 연락하라고 하시곤 퇴근하셨다. 내일 오후에 차담이 있으니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생각해두라고 하셨는데 딱히 생각나는 건 없다. 그냥 차를 달게 마시고 싶은 생각 뿐!


저녁 공양 메뉴도 비슷했다. 다 먹고 나니 공양주보살님께서 바나나를 또 챙겨주랴? 속삭이셨는데 어제 받은 바나나가 그대로 있어 그것을 먹겠다고 했다. 설거지를 하고 널어둔 빨래를 걷었다. 제법 뽀송하게 잘 말랐다.

 

저녁 공양 이후에는 정말 자유시간이다. 휴식형이라 프로그램이 예불과 공양뿐인데 예불도 안드리니 정말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중. 보일러를 틀어놓으니 등이 따땃하고 좋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