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고 쓰는 재미/필사

[필사하기 좋은 글] 뭐든 쓰고 싶은 날, 짧은 책 속 문장 모음

by 비아(pia) 2024. 1. 14.

필사하기 좋은 글
필사하기 좋은 글

 

모순, 양귀자

 

[1]

  어느 날 아침 문득, 정말이지 맹세코 아무런 계시나 암시도 없었는데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한 번만 더 맹세코, 라는 말을 사용해도 좋다면 평소의 나는 이런 식의 격렬한 자기반성의 말투를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열혈한을 만나면 지체없이 경멸해버리고 두 번도 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침,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부르짖었다. 내 인생을 위해 내 생애를 바치겠다고. 그런 스스로를 향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더욱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눈물이, 기척도 없이 방울방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2]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 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3]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부득불 해가면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아껴서 좋은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돈보다 더 아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었다.

 

[4]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5]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1]

  질문자 | 성공적인 결혼의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심시선 |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질문자 | 폭력성과 비틀린 구석이 없다는 건 너무 베이직 아닌가요?

  심시선 | 베이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고 봅니다. 안쪽에 찌그러지고 뾰족한 철사가 있는 사람들, 배우자로든 비즈니스 파트너로든 아무데도 못 갖다 써요. 꼭 누군가를 해치니까.

  질문자 | 그런데 그런 상대를 어렵게 만나······ 섹스를 한다고요? 흥미로운 대화나 서로에 대한 이해 같은 건요?

  심시선 | 아이, 남편들이랑 무슨 대화를 해요? 그네들은 렌즈가 하나 빠졌어. 세상을 우리처럼 못 봐요. 나를 해칠까 불안하지 않은 상대와 하는 안전한 섹스, 점점 좋아지는 섹스 정도가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중략) 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대화는 친구들이랑 합니다. 이해도 친구들이랑 합니다.

 

[2]

  화수도 웃다가 그 뒤에 오는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의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갈색 유리병들이 있었다.

  심호흡을 해야 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의도로 평범한 물건을 사서 걸어가고 있을 뿐이야. 나에게 일어난 일과 지나치게 연관지어서는 안 돼.

 

[3]

  치료가 도움이 되는 날만큼이나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요구처럼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예약을 하고 예약한 날에 외출을 하고, 그런 쉬운 일이 더이상 쉽지 않았다.

 

[4]

  세상은 참 이해할 수 없어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조금 알겠다 싶으면 얼굴을 철썩 때리는 것 같아요. 네 녀석은 하나도 모른다고.

 

[5]

  "할머니 덕에 중산층이 몰락하는 시대에 몰락하지 않을 수 있었죠. 행운이란 걸 알아요. 그래도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네가 아니면 누가 낳아?"

  "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 있는 쪽이."

  거기까지 말하자 설득도 그쳤다. 뉴스는 화수에게 와 독하게 고이곤 했다. 일곱 살짜리가 공원 화장실에서 강간당하고, 스물한살짜리가 그저 이별을 원했단 이유로 목이 졸렸다. 앞으로도 통과시킬 수 없을 거란 걸 알았다.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 조수경

 

[1]

  어떤 사람에게는 자살이 최고의 처방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오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기역 자'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만으로 팔만대장경에 담김 의미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도 쉽지는 않았다.

 

[2]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줄 사람도, 언제나 서로의 편이 되어줄 사람도 가족이라고.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사람도, 설득하기 힘든 상대도, 알고 보면 모두 가족이다. 나는 그 사실을 매일 깨닫는 중이었다.

 

[3]

  "왜 힘들어서 떠나는 걸 죄로 몰아서 더 힘들게 하지? 야, 이서우, 그렇게 바짝 쫄고 그러지 마. 우울증은 죄가 아냐. 아무 잘못 없어. 우리가 뭐, 사람을 죽였어? 아님, 사기를 쳤어? 아니잖아. 그냥 우린 마음이 아픈 것뿐이야. 마음 아픈 것도 몸 아픈 거랑 똑같아."

 

[4]

아무리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과거의 일이겠지만, 어쩌면 다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일들. 살아 있는 한 평생을 달고 다녀야 할 누더기 같은 기억들. 스스로를 찌르고 숨통을 바짝 조일 흉기 같은 기억들이었다.

 

[5]

현실적인 문제보다 현실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간 본성, 진실과 거짓, 삶과 죽음 등)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아마도 내게는 '어떤 집에서 살다 갔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느끼다 갔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필사] 실패에 우아할 것

우울하거나 혹은 무기력감에 빠져있다면 읽어보기 추천하는 글. 정신의학신문에 허지원 선생님이 올리신 '실패에 우아할 것.'이라는 글이다. 실패에 우아할 것. - 정신의학신문 [정신의학신문 :

mindful-pia.tistory.com

 

 

[필사하기 좋은 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우리는 저마다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 같아서 누군가 나를 읽어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대충 읽고선 다 아는 양 함부로 말하지 않기를, 다른 책 사이에서 나의 유일한 가치를 발견해주기를

mindful-pia.tistory.com

 

 

[필사하기 좋은 글] 자존감 높여주는 글귀 모음

자기 전에 가볍게 읽거나 다이어리 빈 공간 채울 때 짧은 글을 찾고 있었던 당신을 위해 준비한 책 속의 짧은 글귀들 모음 어쩌다 가방 끈이 길어졌습니다만, 전선영 [1] "아무리 가고 싶다 해도

mindful-pia.tistory.com

 

댓글